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탄 죽음의 행진 (문단 편집) == 바탄 전투의 패배 == 일본군은 [[진주만 공습]] 직후 필리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. [[미합중국 육군]] [[대장(계급)|대장]] 겸 [[필리핀군]] 육군 [[원수(계급)|원수]] [[더글러스 맥아더]]는 가족 및 참모 일부와 함께 [[미합중국 대통령]] [[프랭클린 D. 루스벨트]]의 명령에 따라 [[미합중국 해군]] [[PT보트]] 편대를 통해 [[호주]]로 탈출했다. 남은 미군과 필리핀군은 1942년 1월 7일부터 바탄 반도에서 저항했으나 물자 보급이 차단되고 보유 물자는 거진 소모한 상태에 [[말라리아]]까지 발생하자 지휘권을 인계받은 육군 [[중장]] [[조나단 웨인라이트]]는 프랭클린 D. 루스벨트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항복을 승인받은 후 1942년 4월 9일 [[일본군]]에게 항복한다. 수만 명의 포로들을 붙잡은 일본군은 이들을 바탄 반도에서 내륙의 수용소로 이송했다. 당시 [[싱가포르]]를 접수한 장군 [[야마시타 토모유키]]의 간청으로 [[중령|중좌]] [[츠지 마사노부]]가 필리핀 14군으로 파견 나왔는데[* 싱가포르에서 필리핀으로 파견 나간 것이다. 그러니까 야마시타는 츠지를 자기에게 보내 달라고 간청한 게 아니라 자기에게서 떨어뜨려 다른 데로 보내버리라고 간청한 것이다. 츠지가 [[이시하라 간지]] 계파에서 [[도조 히데키]] 계파로 줄을 갈아타기도 했을뿐더러, 대본영 참모라 일선 부대의 장군들에 맞먹기까지 했기 때문이다.], 그는 여기서도 근성을 외치는 지휘를 하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명령을 왜곡해 "포로 감시를 엄중히 하라"는 명령을 "미군과 필리핀군 포로를 처형하라"는 지시로 바꾸어 내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